웨스트민스터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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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사원 (Westminster Abbey)
우리는 런던탑의 암울한 역사를 뒤로 한 채 전용버스에 올라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하였다. West는 서쪽 Minste는 대성당, Abbey는 대수도원의 뜻으로 이를 줄여 the Abbey 라고도 한다. 즉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런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영국을 대표하는 4대 건축물 중 하나이다.
사진출처 : Golden Tours Deluxe Sightseeing [웨스트민스터사원, 런던탑, 국회의사당, 타워브리지]
이 사원은 파리 노트르담 사원과 매우 비슷한 외형을 지니고 있는데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8세기경에 노르만 양식으로 지어졌고 헨리 3세(1216-1272)에 의해 고딕양식으로 개축 1503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1163년에 착공 1345년에 완성한 노트르담 사원이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앞서 설계되고 착공되었으니 혹시 헨리3세가 노트르담 사원의 아름다움에 반해 고딕양식으로 개축한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러나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는 수세기 동안의 역사를 견뎌온 건물이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외관이 깨끗했는데 검게 퇴색된 사원을 수년간의 외관 미관 보수공사를 통하여 본래의 하얀 외벽을 되찾게 된 덕분이라고 한다.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교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후 1066년 처음으로 대관식이 치러진 이래 거의 모든 왕들의 대관식이 이곳에서 거행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서는 장례식, 왕실 결혼식 등도 치러지고 있는데 가장 최근의 장례식은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장례식으로 TV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이 사원이 유명한 이유중 하나는 사원의 지하에 색슨시대 이래 역대 영국의 왕과 여왕(엘리자베스1세, 헨리 7세,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 왕족, 정치가(처칠), 문학가(셰익스피어, 키이츠, 워즈워드, 셀리, 조지 바이런), 음악가(헨델), 과학자(찰스 다윈, 아이작 뉴턴), 배우(로렌스 올리비에) 등 3,000여명이 넘는 국민적 영웅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곳에 있는 처칠의 묘는 가묘라고 한다. 영국 국민들은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영국을 구한 국민적 영웅인 윈스턴 처칠이 웨스트민스터사원에 안치되기를 바랐지만 처칠이 끝까지 이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결국 처칠의 소원대로 그의 고향에 안장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영국국민들은 이곳에 가묘를 만들고 항상 붉은 양귀비꽃으로 그의 묘 주위를 치장하여 그의 넋을 기린다고 한다. 또한 이 곳의 모든 무덤을 관광객들이 밟고 다닐 수 있도록 하였지만 오직 두 곳, 1차 세계대전 당시 무명용사들의 무덤과 처칠의 가묘는 밟고 다니지 못하도록 하였다니 처칠에 대한 영국국민들의 존경심을 능히 짐작할만하지 않은가! 또한 이곳에는 영국의 시인 Ben Jonson도 묻혀 있는데 그는 서 있는 자세로 묻힌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일찍이 Charles 1세가 위대한 작가 Ben Jonson에게 사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힐 것을 약속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왕은 그 사원에서 그가 묻히기를 원하는 장소를 선택하도록 허락했다. Jonson이 1637년 운명하자 그가 선택해 둔 장소에 갔으나 거기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아주 작은 공간만이 남아 있었고 그 공간은 너무 좁아 그를 거기에 묻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은 Jonson을 서 있는 자세로 묻음으로써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그러나.... 서 있는 자세로 묻혀있는 Jonson은 과연 기뻐했을까? 궁금하다. 이러 저러한 궁금증과 함께 웨스트민스터 사원 지하 어느 영국성공회 주교 무덤 앞에 적혀 있다는 내가 좋아하는 글도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일요일에는 예배가 있어 개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곳에 간 날이 공교롭게도 일요일이었고 대영박물관에서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아주 짧은 시간 수도원 밖에 머무르며 대수도원을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날도 사원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는데 모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서 있는 것이었을까? 궁금했다. 또한 그곳에서는 차도의 폭이 좁아서인지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다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