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e Laurencin


The Fan 1911년경 Oil on carton
Marie Laurencin은 1883년에 태어나, 꿈많은 소녀시절 그녀는 화가가되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당시의 시대를 이끄는미술가들의 모임의 일원이 됩니다. 그들이 늘 모이던 아틀리에 겸주거용이었던 낡은 아파트, 일명 "세탁선" 으로 불리우던 곳. 피카소그리고 아폴리네르등 전설적인 인물들과 청춘시절을 보내면서 그녀는"연한 담색조와 간결한 포름으로 슬픔을 노래하는 시적 여성상"이라는 독자적인 화풍을 완성시켰습니다.30세가 되었을 때에는 이미 유명한 신인 화가로서 명성을 얻으므로서,당시 파리에 몰려 들었던 세계 각국의 "에꼬르・드・파리(파리파)"라고불리워 졌던 많은 예술가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로 인정 받게되었습니다.
그러나 31세의 결혼 직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그후7년간에 달하는 망명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사랑하는 고향과 벗들과 헤어져고독한 환경속에서 태어난 작품들은,그 어느 것 할 것 없이 아픔과 고독이 배어 나옵니다.전쟁후 이혼하여 단신 파리로 돌아온 마리 로랑셍의 화풍은 크게
변화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의 그녀화폭에 끈끈하게 눌어 붙어 있던
"슬픔"은 어딘가 사라지고, 섬세함과 화사함 그리고 관능미까지 겸비한,
꿈같은 세계의 행복한 소녀들을 그려 냈습니다.
또 다시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까지의 결코 길지 않았던 얼마간의 평화의
나날들, "狂乱의1920年代"의 파리에서 마리 로랑셍은 그시대를 표현했던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녀에게 초상화를 주문하는 것이 상류층 부인들
사이에는 대 유행을 했었다고 하며, 그외에도 무대장치나 의상 디자인등으로도
크게 성공을 했다고 합니다.
그후, 제2차 세계대전중 파리를 점령한 나치스의 독일군에게 자택을 접수
당하는등 고난의 날들을 거치며 전쟁은 종말을 고하고, 급변하는 미술계의
변화를 지켜보며 조용한 여생의 나날을 보내는 중에도, 자신이 믿어온
아룸다움에 대한 신념을 화폭에 담는 작업을 꾸준히 해 왔으며 195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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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미컬한 윤곽선과 심플한 색으로 구성된
자화상. 손에 들고 있는 쥘부채는 로랑셍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인 화재(畵材)
입니다.
이 그림이 그려지기 3년 전부터 시작된,
피카소등에 의한 예술운동 "입체파"의 받은 것으로 보여짐과 동시에
직선과 곡선의 구성이 치밀함과 표현의
섬세함등 로랑셍만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28세의 로랑셍은 당시의 화단의 신진화가로서
발판을 굳히고 있을 당시의 그림입니다.
The Kiss 1927년경 Oil on canvas
파리태생의 작가 써머셋 모옴(1874-1965) 소장품이었던작품입니다. 모옴은 남프랑스 비에라에 있는 별장을 장식하기 위하여 몇점의 로랑셍의 그림을 구입하였는데 그는 1934년 런던에서 있었던 로랑셍의 전람회 카타로그의 서문을 썼습니다. " …더구나 그곳에는 우리들이 한없이 사랑해마지 않았던 파리적 소피스티케이션 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 "광란의 시대 1920年代" 라고 불리워지는 들떠있던 당시의 파리의 사교계, 당대의 인기화가의 그시대의 대표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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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Young Girls
1953년경 Oil on canvas
60세를 넘어 가며 그리기 시작하여 1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년전에 겨우 완성시킨 작품으로 만년의 대작 입니다. 고전적임과 동시에 대담한 구도가 로랑셍의 나이가 들수록 왕성 해지는 그녀의 예술에의 정렬을 느끼게합니다. 배경에 보이는 다리는 세느강에 걸린 다리겠지요. 언젠가 그녀가 그렸던 팟시 다리는 시인 아폴리네르가 그녀와의 사랑을 노래 했던 시 " 미라보 다리 아래세느강이 흐른다" 의 그 미라보 다리 일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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