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그리다 2008. 2. 29. 18:48
 죽음을 예견했을까?

24살인 41년 8월, 고향에 돌아 온 날 밤에 백골이 따라와 누워 있다고 하는 님이,

11. 5일 별을 헤며, 아픈 별 속에서 어머니 추억 사랑 시를 노래한 님이

11.20일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다짐하더니

연희문과 졸업 한 달 후에는 참회의 피를 토하고 있다.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줄에 줄이자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래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울 날에

  나는 또 한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뒤모양이

  거울속에 나타나온다                        <1942. 1. 24>


 

작년 여름,   윤동주 님의 묘를 찾아갔었죠

님의 묘지 가는 길은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진 언덕을 한참 올라가

오른 편에 있었습니다

뙤약볕길이 무색하게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길인양

제 마음은 두근 두근 거렸었어요

묘지에 도착해 보니

묘지 오른 쪽에

27살쯤 되어보이는 청년 살구나무가

주홍빛 살구를 주렁주렁 달고 서서

잎새 사이로 고개를 살짝 내밀고는

수줍게 웃으며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기 힘든 황홀함으로

오랫동안  살구나무와 볼 붉은 살구를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맑은 살구빛 얼굴의 윤동주 시인을 그렇게 만났습니다

윤동주님의 시를 읊조리다가 

나의 고백, 나의 참회록이 되어버린

서시, 참회록, 십자가 `````````

2007년 <서시>가을호에 실린 제 글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소개합니다

 

 

 

하늘 바람 별 산 내 들

- 윤동주 생가방문 르포 2007. 7. 26 ~ 30


 박이정(시인)


백골이 따라 와 한 방에 누운 간도를 향하여……


  첫날

  설렘으로 꽉 찬 공항 대합실, 동주에 대한 그리움에 잠을 설친 시인들이 하나 둘 서둘러 도착한다. 여권을 깜빡 잊고 온 ㅇ시인이 퀵서비스로 날아 온 여권을 서둘러 받은 뒤 푸른 하늘을 뚫고 구름 위를 날아간다. 해발고도 3000 m 상공까지 날아 오른 그리움, 윤동주가 잡아당기는 줄이 팽팽하다.

  12:45.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13:30에 심양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만주는 우리나라와 같은 경도인데도 중국이 베이징을 표준시(120°E)로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나라(135°E)보다 한 시간 느린 시간을 쓴다. 17세기, 중국을 차지하고 청왕조를 연 누르하치의 아들(태종)이 세운 고궁과 서탑거리가 펼쳐진다. 그 밤, 심양에서 연길로 이동.


한반도 북쪽 땅 끝 산꼭대기, 빈혈 앓는 감자꽃


  둘째 날

  삼합으로 가는 길, 가이드의 목소리에 설친 잠이 쏟아진다. 실은, 한 시간 빨리 모닝콜 예약을 해 놓은 내 핸드폰 소리에 변삼학 시인이랑 벌떡 일어나 꽃단장 하고 식당에서 두 시간 기다렸다. (어벙 박 & 건강미인 변) 들러붙는 잠을 간신히 떨치니 수풀 사이로 간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김약연 선생님의 묘가 빠르게 지나간다. 윤동주 생가라 쓰인 비석이 눈을 잡아당긴다. 웃통 벗은 소년들이 씨름대회를 위해 님의 옛집으로 들어간다. 마음 바빠진 버스가 회령마을이 보이는 곳으로 서둘러 달린다.

  꿈에도 궁금했던 두만강은 울다 지쳐 눈물이 마르고 무산철광에서 흘러나오는 폐수만 말없이 허리를 휘며 흐른다. 폭 좁은 두만강흙물 건너 회령땅, 산언덕 꼭대기에서 빈혈 앓는 감자꽃이 헤멀거니 웃고 있다. 산길목 맞은편에서 경운기 한 대가 올라온다.“절벽에서 바위덩이가 떨어져 길이 막혔어요!”어디서 출발해서 이곳을 지나는 걸까? 조금만 더 가면 회령 땅의 생활상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는데 무척 아쉽다. 발 밑 저 아래 두만강변을 잰걸음으로 걷는 두 사내, 바짝 마른 몸, 발걸음이 바쁘다. 혹 탈북자는 아닐까? (동포들은 절대 탈북자를 신고하지 않는단다) 내 발이 딛고 있는 이곳이 한반도의 북쪽 땅 끝 부근이구나! 보랏빛 싸리꽃 위로 태양이 뜨겁게 내리쪼인다. 동주의 증조할아버지가 넘어오신 저 강을 뒤로 하고 시내로 들어가 보드라운 살결의 물냉면을 먹었다. 맛이 일품이다.


님은 한 그루 살구나무가 되어


  27살 청년, 애인 만나러 가는 길, 십리 사래 긴 옥수수 밭길 따라 드넓은 가슴을 쫙 펼친 언덕이 먼저 나와 반긴다. 작년에도 여길 왔던 문정영 시인이 오른 쪽을 두리번거리며 묘를 찾는다.“이 근처인데 ~ 여기다! 어 아니네, 저기다! 여기도 아닌데 ~ 함 불러보소! 윤동주 님을, 어디지? 그 사이 이사 갔나본데, 오막살이에 있다가 32평으로 이사를 가셨나?” 더위에 땀범벅 된 우리는 님을 만나고픈 설렘에 한마디씩 말 잇기를 하며 강아지풀 우거진 무덤 지나 살구나무표지 따라 동산묘지언덕을 내려간다. 염소 떼가 우리 앞서 참배하고 갔는지 군데군데 염소 똥이 한 무더기씩 보인다.

  동주는 한 그루 산 살구나무가 되어 가지마다 촘촘히 열매를 매달고, 첩첩산 구름파도 아래 한줄기 강처럼 붉은 지붕들 어깨동무한 연길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잎새 사이로 붉은 볼 알알이 흔들며 껍데기만 끌어안고 도착한 나에게 신맛 단맛 번갈아 내시며 들려주고픈 말이 많았는지 바쁘게 말씀하신다. 과자 다섯 개, 살구 네 알, 술 한 잔 올리고 가슴 메이는 인사를 드리자 님이 방실방실 웃으며 가지마다 몸을 흔들어 우리의 인사를 받는다. 살구나무 왼편에 계신 님의 고종사촌 송몽규 열사에게 인사드린 뒤 그리스도공동묘지동산을 내려온다. 길목을 지키던 택시가 연길시가지를 훌쩍 건너 먼지땀범벅의 우리를 일송정에 쉽게 내려놓는다.


일송정에 올라


  찻집‘선구자의 집’에서 냉커피를 마신다. 가장 높은 봉우리, 한 그루 소나무 버혀진 자리에 정자가 세워져 있다. 정자 옆 어린 소나무 한 그루가 청청한 잎을 빛내며 연변시내를 내려다보고 서 있다. 한줄기 직선으로 도시로 흘러드는 해란강 가슴에 젖이 가득 고여 있다. 이 도시에 젖을 물리고 두만강에 합류하여 동해로 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봇물처럼 터지는 노래를 꾹,꾹, 눌러 참고 있는데 등 뒤에서 유정이 시인이‘선구자’를 선창한다. 강물 되어 흘러간 선구자, 김 윤 � 송 나 문 강 안 정 ……의 이름을 하나씩 떠올리며 나도 해란강에 몸을 섞는다. 


한민족의 심상에 자리한 아리랑 고갯길


  명동촌 동주의 옛집에 들어서자 아리랑고개가 일행 앞에 몸을 드러낸다.

  우리 부모님이 20-30년대에 입었음직한 한복을 울긋불긋 차려입은 사람들, 아낙과 남정을 가득 품고 있던 폐허의 붉은벽돌건물이 총천연색 나비 떼를 하나 둘 나폴나폴 줄지어 토해낸다. 무명 한복을 입은 남정이 나비 떼 속에서 튀어나와 상모를 돌린다. 내 몸이 나도 몰래 그 속에 뛰어들어 그 님들 끌어안고 얼싸둥둥 춤을 춘다. 노랑 빨강 초록 꽃분홍 나비 떼가 압제의 굴곡진 역사 위를 날아오른다. 107년 전 고향땅 회령에서 울렸던 그 풍악이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라리 ~ 고된 보따리 무게에 실린 풍악 소리 징 소리에 왈칵 눈물이 솟는다. 주름진 나비, 햇볕에 그을린 나비, 옥수수알 가지런히 알알이 박힌 미소에 빨려 들어가 내 날개도 나풀나풀 날아오른다.

  평상복이 훤히 비치는 한복차림의 부녀회장이 인사를 한다.“해외에서 오신 동포 여러분 반갑습니다.”해외에서 왔다는 말이 왠지 낯설다. 오래 되어 늘어난 카세트 테이프가 두만강을 에도는 물줄기처럼 울렁울렁 돌아간다. 두고 온 고향 회령땅이 울렁인다. 망향의 설움고개가 울렁인다, 그들과 함께 아리랑고개를 넘어도 그 애환을 다 못 읽어내는 우리는 눈치도 없이 제 박자에 맞춰 노래를 따라한다. 투명한 여린 하늘색 머플러, 평화로운 나래 타고 뼈대만 남은 건물 속에서‘조선족 이주역사 무언극’막이 오른다.

    

   고향 하늘이 펼쳐진다 아리랑 ~

   국경을 넘나드는 철새가 날아든다 아리랑 ~

   누렁소 수레 끌고 오랑캐령 넘어간다 아리랑 ~

   간난 애 업은 아낙이 넘어진다 아리랑 ~

   명동촌에 짐 부릴 때까지 다시 일어선다 아리랑 ~

   곡괭이 들고 돌짝산 올라간다 아리랑 ~

   호미 들고 볍씨 뿌리러 넘어간다 아리랑 ~

   박수치는 내 손바닥에 눈물이 고인다 아리랑 ~


   검은 곰팡이꽃 활짝 핀 건물 안, 풀잎들이 떨어져 나간 문짝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있다.


제4회 윤동주 배 씨름대회


  포플러 세 그루 나란히 서 있는 앞에 낡은 오토바이 한 대가 기대어 졸고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서러워한 님이 포플러 가지를 흔들며 나뭇잎 사잇길을 걸어 나와 시원한 바람을 부채질 해 준다. 함께 동행한‘모래판의 신사 이준희’감독이 신호를 보내자 소녀소년들의 씨름판이 벌어졌다. 조선의 자손의 자손의 손녀 손자가 샅바를 두르고 모래판을 뒹군다. 한국인 고유의 민속놀이에 시공을 초월한 명동촌이 흥겹다. 한 소년이 시합 전에 기도를 한다. 천지 맑은 물 그득 담긴 소녀소년의 눈동자, 나무 숲 그늘에 앉아 구경하는 사람들, 무리 뒷켠에서 먼 하늘 응시하며 담배 피우는 세 사람! 서상권 시인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선구자의 요람, 명동교회


  예배당 담벼락에 아이들 그림이 걸려있다. 수염 긴 안중근, 두 손에 쇠사슬 찬 윤동주, 눈 부라린 홍범도, 호령하는 김좌진…… 앞마당, 김약연 선생 추모비가 왼쪽 상단부가 파괴된 채 성경책 모양의 기단 위에 올려져 있다. 예배당 높이 종을 매달았던 나무가 40여 명의 선구자를 처형한 십자가가 되었다. 허리 잘린 나무 가장자리가 검게 탔다. 조선을 밝히신 님들이 빛바랜 사진 속에서 눈에 빛을 내며 예배당 안에 살아계신다.


 Exodus

        - 김약연 선생 추모비 앞에서

 

  물새 골짝 두만강 넘어

  샛별 앞세우고 반달이 간다

  광야에 벼이삭 이어 달릴 때까지

  아리랑 ~ 넘어가는 회령 농민들

  반달 활대 높이 치켜 든

  명동촌의 샛별,

  선구자 피 맺힌 그루터기

  100년의 나이테 팽팽히 잡아 당겨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타는 목마름으로 활을 쏜다

  조선의 모세

  김약연


  연변대학 김경훈 교수와 제1회 윤동주상을 수상한 이재무 시인의 세미나를 마치고 마당에 나오니 포플러 잎새에 샛별이 피어난다.


부활한 시인 윤동주


  독립운동의 죄목으로 한 줌의 재가 된 윤동주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고향에 돌아왔다. 그의 시세계는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더라도 우리에게 영원한 가치를 부여하는 서정성에 기원을 두고 있다. 아파해야 할 것들은 많은데 쉽게 쓰여지는 시를 부끄러워했던 님, 올곧은 정신으로 시대의 파시즘에 저항하던 님, 홀로 괴로워하며 참회록을 쓴 동주는, 예수가 골고다언덕에서 죄 없이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가 부활한 것처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죄 없이 죽어 오늘 우리에게 부활했다. 껍데기는 가라던 신동엽, 동학의 혼으로 군부와 싸운 광주의 전사 김남주 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지나고 나면 역사가 된다.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는가? “시대를 아파하지 않고 세속에 분노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不傷時憤俗 非詩也).”는 다산 정약용 말이 되뇌어진다. 죽음을 예견했을까? 24살인 41년 8월, 고향에 돌아 온 날 밤에 백골이 따라와 누워 있다고 하는 님이, 11. 5일 별을 헤며, 아픈 별 속에서 어머니 추억 사랑 시를 노래한 님이 11.20일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다짐하더니 연희문과 졸업 한 달 후에는 참회의 피를 토하고 있다.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줄에 줄이자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래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울 날에

  나는 또 한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뒤모양이

  거울속에 나타나온다                        <1942. 1. 24>

 

 


아, 까만 밤이여! 아픈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조선족임을 상징하는 팔짝지붕이 푸른 하늘 뭉개구름 위로 날아오를 듯 날개를 활짝 편다. 나무굴뚝이 본채 쪽으로 다정히 솟아 있다. 담벼락에 걸린 작은 칠판에 조선족최초학교명동소학교 반 아이들 이름이 적혀있다. 떠드는 아이-송몽규, 구구단 못 외우는 아이-문익환, 청소당번-윤동주, 지각생-김옥분, 100여 년 전 아이들이 감자밭고랑을 뛰어 달린다. 옥수수 밭에서 술래잡기를 한다.

  너른 마당 한 가운데, 서슬 퍼런 붓꽃의 이파리들이 노을 비낀 분홍 하늘에 시를 쓰고 있다. 마당에 멍석이 깔리고 아낙이 두레반상에 음식을 나른다. 토종닭과 단고기가 한상 그득하다. 중국 술 이과두주를 마시며 주거니 받거니 노래하다가 앉아 있는 아낙의 손을 잡아끌어 일으켜 안고 춤을 춘다. 선양회 연변지부(김경훈 회장) 연변대학생들의 낭랑한 시낭송이 이어진다. 서울에서 출발한 시인들, 선양회 식구들, 함께 간 자녀들 모두가 명동촌의 주민과 어울려 하나가 된다. 낮에 곱게 한복을 입고 춤을 추던 풍물단이 오래된 가락을 다시 한 번 꺼내어 우리의 눈가를 적신다. 명동촌 이장님도 젊은 처자도 음식을 내 오는 아낙도 스스럼없이 어우러져 함께 노래 부르고 춤을 춘다.

  “내 이름은 박이정입니다 당신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럼 제가 동생이네요. ㅋㅋ. 아들은 청도에서 이발을 하고 저는 남편과 함께 천 평 언덕밭을 일구며 삽니다.”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비벼대니 슬픔이 묻어난다. 또 다른 아낙을 끌어안고 춤을 춘다.“저는 이 마을에서 양봉을 하는 지영옥입니다. 아 그럼 제가 언니네요” 한참 춤추며 놀다 너무 늦었다며 바삐 집으로 간 그녀가 피나무꽃꿀 두 병을 들고 뒤뜰로 나를 불러낸다.“자식이 서울 가면 전화 할 곳이라도 있으면 좋겠어요, 전화번호와 주소 좀 알려주세요.” 아! 이 밤이여! 눈물이 뚝뚝 별처럼 박히는 이 까만 밤이여! 옥수수들판을 건너온 바람이 칼날처럼 예리한 붓꽃의 이파리를 흔들자 북간도에 스치는 별이 온 몸의 세포를 아프게 깨워 일으킨다.

  뼛속 깊숙한 곳에서 속절없이 튕겨져 나오는 이 울림!, 아리 아라리 ~ , 우리가 한 핏줄임을 온 몸으로 외치는‘윤동주의 밤’이 깊어만 간다. 우리는 잊지 못할 기억 한 토막씩을 가슴에 담는다. 별 떨기 무성한 밤은 깊어 버스는 어둠을 뚫고 밝다뫼(백두산)를 향하고 샛별 앞세운 반달이 감자밭쪽으로 기울며 간다.


밝다뫼 맑은 물아!


  천지 맑은 눈동자를 보려고 기대로 부푼 아침, 천문봉 봉우리로 오르는 긴 숲길, 자작나무들이 몽땅 나와 안개비를 맞으며 반긴다. 사스레나무, 이도백하, 외인송  산꽃, 춤추며 내리는 안개비의 리듬에 맞춰 몸 흔드는 키 작은 야생화들, 차창 밖으로는 천상의 세계가 끝없이 펼쳐지는데 무정한 지프가 구불구불 드르륵 휙 - 휙 - 오르더니 덜컹 우리를 백두산의 어깨쯤에 내려놓는다. 풀도 꽃도 자라지 않는 맨 흙이다. 안개를 몰고 온 빗줄기가 더욱 거세진다. 그 마음으로는 나를 만날 수 없다는 듯 비바람이 내 몸을 꺾는다. 뿌연 허공을 뚫고 가파른 천지를 오른다.

  너무 수줍다 못해 도도해져 버린 새악시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얼굴인가? 천지의 마음대로, 천지가 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지조 높은 천지의 맑은 눈동자를 상상하며 터덜터덜 내려와 자작나무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간다. 온천물이 흘러내리며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른다.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빗발 너머 장백폭포가 몸을 드러낸다. 어깨를 쫙 펴고 힘차게 물줄기를 떨어뜨리는 기품이 당당하다.

 

두만강 뗏목을 타고 앉아


  넷째 날

  둥근 지구에 마지막 남은 날선 파편조각, 분단 60년. 흙탕치며 가는 두만강 물줄기야! 이념이 파 놓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네 몸 위에 뗏목을 띄운다. 뗏목의 노를 들여다보니 대나무 노의 30센티 정도가 물속에 잠기는 것 같다. 이렇게 얕은 물이 영하 20도에 꽁꽁 얼어붙으면 또 다른 관광사업이 벌어진다. 너무 가까운 강폭을 사이에 두고 감시카메라를 돌리는 북한과, 두만강을 다 차지하여 관광사업을 벌이는 중국, 잔인한 현실이다. 이곳에서 탈북한 사람들이 다시 북송될 때는 두 손을 합장시킨 채로 날카로운 갈고리로 두 손을 찍어서 북에 남아있던 식솔들과 함께 골짜기에 버린단다. 살아남는 자는 살아남고 먹을 게 없어 죽는 자는 죽는 것이 실상이다. 한 하늘아래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북한감시병이 언뜻 언뜻 나타났다 수풀 너머로 사라진다.

  날카로운 이념의 칼로도 나눌 수 없는 구름이 북쪽으로 흘러간다. 산 내 들은 모두 하나라고 저 하늘이, 이 강물이, 내 눈이 말하고 있는데 사람의 생각들만 둘로 나뉘어있다. 고통스런 두만강, 슬픔의 눈물방울이 잰걸음으로 동해로 흘러가고 있다.


서울 아리랑 ~


  다섯째 날

  민족을 깨우는 빛으로 내 안에서 다시 태어난 윤동주,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죽은 고향에 가득한 하늘, 바람, 별, 산, 내, 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말에서 시대를 아파한 님의 흐느낌이 들린다. 아픈 별이 서울까지 따라온다, 재중동포 간도이민역사의 아리랑고개를 넘다보니, 휙~ 어느새 인천공항이다. 명동촌 백의민족 축제의 불 밝힌 <서시> 아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