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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웃으면서 하고 연습은 실전처럼 한다

별을 그리다 2008. 3. 30. 10:59

 

전쟁은 웃으면서 하고 연습은 실전처럼 한다


  1921년 7월 7일, 러시아 국경 도시 키아트(Khiagt)에서 독립전쟁을 벌이던 몽골의 영웅 수흐바타르가 울란바타르를 수복한다. 그날의 대포 소리(그 대포는 지금 울란바타르 시내에 있는 복드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200여 년간 청나라의 굴레에서 신음하던 몽골인들에게 희망의 축포이자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당시 몽골의 칸이었던 제8대 복드칸은 몽골의 독립을 축하하기 위해 대규모의 축제를 준비한다. ‘나담’, 몽골인들의 최고 축제이다.

 

  ‘놀이’란 뜻의 나담 축제는 2천년 전인 흉노 시대(기원전 3세기-1세기)부터 유목민들의 전 민족적 축제였다. 당시엔 “에린 고르반 나담”(Eriin gurvan naadam)이라 불렀는데, 남성의 세가지 놀이라는 뜻이다. 나담의 종목인 말경주, 씨름, 활쏘기를 남자들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현대에 와서 여자들도 활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씨름은 지금까지도 남자들만 참가하고, 말경주도 수컷말만 참가할 수 있다.

 

  유목민들에게는 이 세 가지 놀이는 축제의 의미를 넘어선다. 그들은 전쟁 훈련 삼아 사냥을 하곤 했는데, 나담의 종목이야말로 사냥만큼 효과적인 전쟁 연습이었다. 유목민들은 병사와 백성 가릴 것 없이 모두 함께 흥겹고 역동적인 나담 축제를 즐겼다. 씨름을 잘 해야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고, 말이 잘 달려야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으며, 말을 달리면서 활을 잘 쏴야 전쟁을 승리할 수 있다.
 
  나담은 정착민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의미인데, 오늘날엔 매년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린다. 독립기념일의 의미를 부여한 것인데, 그 날짜를 정하게 된 배경이 재미있다. 원래 수흐바타르가 울란바타르를 수복한 것은 7월 7일이었다. 복드칸은 그날을 기념해 축제를 준비했는데, 그날부터 쉬지않고 큰 비가 내렸다고 한다. 평균 강수량이 240mm인 나라 사람들에겐 하늘의 축복이었겠지만,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바람에 축제는 비가 그친 뒤에야 시작될 수 있었다. 그날이 7월 11인, 오늘날의 나담 축제일이 된 것이다.

 

  7월 11일 축제는 물론 전국 나담일이다. 각 아이막(도)과 각 솜(군)에서 선발된 사람들이 참가하는 결승전의 의미이다. 이미 초여름부터 지역 대회들이 열리는데, 한해 나담에 참가하는 말만도 1만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나담이 시작되면 대통령의 개회식과 함께 화려한 식전 행사가 진행되고, 세가지 전통 놀이가 열린다.

 

 

  첫 번째 행사는 ‘부흐’(몽골 씨름)이다. 경기장 중앙 잔디밭이 덩치 큰 씨름 선수들로 가득 찬다. 무려 1024명이다. 512강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어 256강전, 128강전, 64강전, 32강전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32명의 선수가 남게 되면 그들에게는 ‘나친’(Nachin, 송골매의 일종)이란 칭호가 주어진다(우리말의 ‘수지니 날지니’를 몽골에선 ‘수친 나친’이라 부른다). 다시 승리한 16명의 선수에겐 4품위인 하르차가(Khartsaga, 매의 일종이며 자기보다 더 큰 새도 잡아먹는 사나운 새) 호칭이 주어지고, 3품에겐 ‘자안’(Zaan, 코끼리), 2품에겐 ‘가르디’(Gardi, 신화속의 새), 1품에겐 ‘아르슬랑’(Arslan, 사자)이란 칭호가 붙여진다. 최종 승자는 챔피언이란 뜻의 ‘아와르가’(Awarga)라 불린다.

 

photo by Kim dong joo

 

  선수들은 씨름 시합이 펼쳐지기 전에 춤을 춘다. 외국인의 눈에는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수들은 춤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나는 힘이 더 세다, 너를 이길 수 있다, 자신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의식이다. 춤추는 모습이 꼭 하늘을 나는 매의 형상을 따라하는 것처럼 보인다. 몽골인들이 생각할 때 세상에서 제일 크고 제일 힘이 센 새인 한가르디(Khan Gardi, 신화 속의 새, Khan은 가장 좋은 것에 붙는 접미사)의 모습을 보여야 최고라고 본다.

 

  춤이 끝나면 본격적인 겨루기가 시작된다. 몽골 씨름에는 유목민들의 특징이 숨어있어  씨름을 하는데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없다. 넓은 초원에서 타인의 간섭 없이 제 마음대로움직이는 유목민들은 구속을 싫어한다. 그들은 시간이나 공간에 ‘제약’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던 사람들이다. 이사를 할 때도 날씨만 좋다면 오늘 해도 되고, 내일 모래 해도 되고, 제 마음대로 제 편한대로만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이런 유목민의 마음은 현재의 씨름 시합에 많이 남아 있다.

 

  씨름도 시간과 공간의 제한 없이 폭 넓은 운동장이나 넓은 초원에서 펼친다. 가장 오래 걸린 씨름 시합은 1997년 7월 나담 축제 결승전 벌어졌던 시합인데, 이 시합은 무려 세 시간이나 걸렸다. 마지막 남은 선수 두 명이 세 시간 동안 시합을 한다는 것은 스포츠 마케팅의 관점에서는 가당치 않을지 모른다. 우리나라 씨름이나 일본의 스모는 몇 분만에, 심지어 몇 초만에 승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좁은 땅에서 수많은 인구가 사는 문화에서는 시간과 공간은 언제나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무슨 일을 하든 “빨리 빨리”로 해야 하고, 시간은 초단위로 나누어 계산하며 살아간다.
 


  씨름 선수의 복장도 특이한데, 등 부분만 천으로 가리고 앞은 끈으로 연결한 독특한 이 옷에도 역사가 숨어있다. 100여 년전, 당시 최고의 씨름 선수가 있었는데, 그는 여러해에 걸쳐 챔피언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선수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남성들만이 참가할 수 있는 경기에 여성이 참가했다는 것은 금기를 어긴 것이었다. 그 때부터 여성이 씨름에 참가할 수 없도록 앞섶이 없는 옷을 입게 되었다.

 


  씨름 경기장 밖에서는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활쏘기 시합이 펼쳐진다. 옛날에는 말을 달리면서 움직이는 목표를 쏘는 경기였는데, 청나라의 지배를 받은 이후부터 마상 활쏘기가 아닌 서서 쏘는 시합으로 변했다. 청나라측에서 몽골인들이 전쟁을 잘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전쟁의 ‘연습’이었던 나담을 ‘축제’로 전락시킨 것이다. 이때부터 여지들도 시합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몽골 비사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칭기스칸 동생인 카사르(Khasar)는 355ald(1ald는 팔을 길게 펼친 거리. 약 1.6m - 1,7m)에 있는 과녁을 맞췄다고 한다. 대략 580미터에 이르는 어머어마한 거리이다. 현재의 나담 축제 때는 남자는 70m 과녁, 여자는 60m 과녁 시합을 한다. 하지만 땅에 발붙이고 서서, 그것도 움직이지도 않는 과녁을 맞추는 활쏘기 시합은 세가지 종목 중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종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축제의 백미는 역시 말달리기 경주이다. 나담에 참가하려면 말을 관리하는데, 그 말들은 밤 9시에서 새벽 4시까지만 풀을 뜯기고 그 외의 시간에는 풀을 뜯기지 않는다. 물도 조금씩 먹이고 많이 타지도 않는다. 겨울철에는 특히나 조금만 타는데 살이 찌지 않을 정도로만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photo by Kim dong joo

 

  말경주에는 수말만 동원된다. 1살 말 경주, 2살 말 경주, 이렇게 3살, 4살, 5살 따로 따로 경주를 한다. 6살 말 대회는 없고 7살 말 이상은 어른말이라고 하여 한꺼번에 경주를 한다. 5살 말까지는 어린말이고 7살 말부터는 어른말이라 하는데, 6살 말은 어른말도 아니고 어린말도 아니어서 대회가 없다. 말 기수도 3살에서 12살 가량의 어린 아이들이다. 너무 무거우면 속도를 낼 수 없어 어린이들이 기수를 한다.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안장 없이 30Km를 완주하는 아이들도 많다. 안장도 없는 말을 타는 기술도 놀랍지만 더 가볍게, 더 가볍게 살아가려는 유목민의 정신을 보는 것 같다.

 

  말경주를 하면 1등부터 5등까지 상금을 준다. 상금 수여에서도 유목민들의 공정한 분배 시스템을 찾을 수 있다. 상금은 기수만의 것이 아니다. 말에게도 그만한 영광이 돌아간다. 몸값이 무려 500배쯤 뛰어오르고, 그의 땀을 만져보기 위해 사람들이 달려들어 아수라장을 만든다. 특히 말을 조련한 사람, 즉 숨어있는 공로자에게 더 큰 공이 돌아간다. 다리를 다쳐 전쟁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후방에서 활을 만들고 칼은 가다듬은 병사에게도 똑같은 전공을 내렸던 칭기스칸 군대의 전통인 셈이다. 

 

  맨 꼴등에게도 상품을 주는 전통이 있다. 꼴등은 ‘바양 허더드’(Bayan Khodood)라고 하는데, Bayan은 풍부하다, Khodood는 내장(內臟)을 뜻한다. 배에 기름이 끼었다는 조롱이 아니다. 꼴등에게 주는 상품이 양고기인데, 이번에는 꼴등을 했지만 그건 말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주인이 잘못해서이고, 다음에는 꼭 일등을 할꺼라는 격려이다. 황소를 주듯 양고기를 주면서 꼴등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나담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신화나 설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예쁜 여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 멋있는 남자들이 모인다. 그러면 여자의 부모님은 나담 시합을 통해 최고의 신랑감을 뽑는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한 가난한 젊은이가 나담 축제에서 일등을 차지해 부자가 되고, 장군까지 되었다는 내용도 있고, 만주 시대에 도둑질을 해서 감옥에 간 사람이 왕의 특별한 배려로 나담 축제에 참여했다가 일등을 차지해 왕명으로 사면이 되었다고도 한다. 지금도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최고의 덕담은 훌륭한 씨름 선수, 훌륭한 나담 선수가 되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