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화/유래전설

마누라는 월래 종이 상전을 부르는 말?

별을 그리다 2006. 4. 4. 10:20

 


 

   마누라원래 종상전부르는 말?

마누라, 마님, 서방, 영감, 도령, 도련님, 이것들은 누구나 일상적으로 정답게 쓰고있는 말이다.그렇다면 과연 이 단어들의 어원은 무엇일까? 그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하자.


마누라.마님

본래의 마라하, 마라님이 변한 말이다. 지금 부인을 일컫는 마누라는 근대까지만 해도 부모를 통칭하는 존댓말로 쓰였다. ‘삼강행실’에 ‘마노랏 부뫼’(公父母)와 같이 공(公)의 뜻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두편람’에서도 “마노라(抹樓下)는 옛말에 노비가 상전을 존칭하는 말이라.” 하였으니 남녀에 통용된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로지 부인만을 지칭하는 마누라로 변하였다.

한편 ‘마님’은 종이 상전을 부를때 쓴 존댓말이었다. ‘마라님’이었는데 ‘마라’가 말모음 아를 잃고 ‘말’로 축약된 다음 ‘솔나무, 버들내’가 ‘소나무, 버드내’로 변하듯이 ‘말님’이 다시 ‘마님’으로 변하였고 ‘마라님’이 변하여 ‘마나님’이 되었다. 이말은 존비사회가 붕괴되면서 이제는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요컨대 이 말들은 비천한 사람이 존귀한 상전을 부르는 호칭어로서 본래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통용되다가 이제 ‘마님, 마나님’은 거의 사어가 되었고, ‘마노라’는 근세에 노부인의 경칭으로 쓰이다가 현대에는 ‘마누라’로 변하여 ‘아내의 속칭, 노부인의 경칭’으로 쓰일 뿐이다.


서방(書房,영감(令監)

이 서방, 박 서방, 김 서방 할 때 ‘서방’은 벼슬이 없는 사람의 성 아래에 붙여 이름 대신 부르는 말이었다. 한편 서방맞다는 ‘남편을 얻다’란 뜻으로, 서방질은 제 남편이 아닌 남자와 동침하는 것을 말한다. 조선 초기의 이 말은 ‘西房(서방)’으로 적혀 있다. 당시에는 ‘시집가다’를 ‘셔방맞다’라고 했으니 지금과는 아주 다르게 쓰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西房’으로 적어오다가 뒤에 그 표기가 ‘書房’으로 바뀌었다.

정이품 이상의 관원을 높여서 ‘대감’이라 불렀고, 정삼품과 종이품의 관원에게는 ‘영감’이라 칭하였다. 지금은 나이든 남편이나 노인을 일컫거나 면장, 군수. 판검사 등을 구습에 따라 존대하여 부르는 말이지만, 그마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도령.도령님

도령이라고 하면 춘향전의 이도령이 유명하다. 도령은 총각을 대접하여 일컫는 말이다. 신라 초기에 소벌공(蘇伐公)을 소벌도리(蘇伐都利)라 불렀는데 즉, ‘도리’는 공(公)이란 뜻으로, 오로지 남자의 존댓말로 쓰였다.

또한 고려때 귀한집 아들이 절에 들어와 중이 된 총각을 도리(闍梨)라고 불렀다. 그 어원적인 의미는 돌(石)로 수명견고(壽命堅固)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실지 발음은 되련님~데린님으로 실현되는 도련님은 혼인 전의 시동생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이제 이 정다운 호칭대명사의 대부분은 풍전등화처럼 가물거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어받아야할 젊은 세대가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언어의 변화는 자연적 흐름이니 어찌하랴.

 

 

 
춘 래 불 사 춘 (春來不似春)

       봄은 왔는데 봄같지 않다  (고사성어로 세상보기)

한나라 원제는 후궁이나 궁녀를 뽑을때 그림으로 그린 여인들을 보고 뽑았다.

그러니 고관대작들은 그림쟁이에게 뇌물을 갖다 바치며 자기들의 딸이 간택될수 있도록 로비를 했다. 천민출신인 왕소군은 중국의 4대 미녀중 하나로 미모와 인격은 후궁에 간택되어야 함에도 말단 궁녀로 뽑힐 수밖에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후 북방 흉노족의 왕자 선우가 원제에게 진귀한 보물을 바쳤다. 이에 원제가 답례의 의미로 선물을 주겠다고 하자 선우는 머리를 조아리며 “저기 서있는 궁녀와 혼인하게 해주시오”라고 청했다. 선우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원제는 ‘천상에서 선녀가 내려 왔구나’ 감탄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원제는 연회가 파하자 그림쟁이를 불러 처형하고 말았다.

왕소군은 원하지도 않는 남편을 따라 북방에 갔다. 북방엔 잔설이 남아있고 차가운 바람만불어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은 왔어도 봄같지 않네) 라고 자기의 심정과 북방의 현실을 노래했다.

우리 땅에선 조선조 명종이 국사를 잘하던 중 갑자기 붕어하자 백성들이 허탈해 하며 인용했던 말이기도 하다. 박정희 죽음후 1980년 봄, 이제는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이 오리라 믿었다가 또다시 군홧발에 밟히게 됐을 때도 이 말을 쓰며 시대를 안타까워 했다.

정치 혼란과 경제 불황 등으로 세상이 각박하고 민심이 흉흉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최근 불거진 이해찬 총리 골프 파문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매사에는 때가 있는 법, 밥을 먹어야 할때가 있고 골프를 쳐야 할때가 있다. 정치가 순리대로 굴러가고 정치인들이 제 자리를 지킬줄 알 때 봄은 우리 마음에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