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ic Centre of Rome,
the Properties of the Holy See in that City Enjoying Extraterritorial Rights and
San Paolo Fuori le Mura (1980년 지정, 1990년 추가 지정)
- 로마의 역사 중심지와 성 바울로 성당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 팍스 로마나'...
로마가 아니면 어느 도시나 나라가 이런 찬사를 받을 수 있겠는가 ?
이탈리아 통일(1870년)의 위업을 달성한 초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
무솔리니가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기 위해서 혼신을 다한 건축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에서 바라본 베네치아 광장 -
왼편에 베네치아공화국 대사관이 있었기때문에 베네치아 광장으로 부르며 한때는 세계 역사의 축이 이곳에서 일그러진 적도 있었다.
무솔리니의 관저로 전쟁 선언이 이곳 발코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유럽의 쓸만한 땅들은 모두 로마제국의 속국들 이었다. 로마가 버린땅은 서쪽의 대서양이고, 동쪽과 남쪽의 사막, 그리고 몽골을 비롯한 다른 제국들도 별로 탐탁하게 여지 않았던 북쪽의 산림지대였다. 이베리아(Iberia) 반도 끝까지 지중해를 정복한 마당에 대서양은 부담스러울 뿐이고, 카르타고(Carthago)를 넘어가며 사막까지 관리할 필요도 없으며, 라인강과 다뉴브 강 북동쪽의 산림지대와 추운날씨에서 머리 두세개는 더 큰 바바리안-게르만과 전투를 벌이다 병사를 잃을 까닭은 없다.
콜로세움 - 대부분의 여행자가 로마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곳은 2개의 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나는 승리자를 위한 문이었고, 또 하나는 패배자를 위한 문이었다. 콜로세움은 역사에 저 멀리에 자리한 힘의 논리를 보여준다.
승자는 영광을 패자는 자신의 힘이 아닌 남의 부축이나, 저승사자의 손에 끌려가야 했던 문 또한 그러하고,
우리와 달리 민주적인 좌석 배치라 불리는 저 좌석배치도 사실은 너무나 철저하게 사회 계급과 힘에 의한
좌석 배치가 되었다는점을 보여준다.
역사적인 기록상 가장 강력한 제국. 유럽사에서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전혀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아를과 아비뇽은 로마유적을, 독일과 영국은 로마의 국경을,
스페인은 수로교를, 북아프리카의 튀니지는 카르타고의 문명을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자랑스럽게 지정해 두었다.
트레비 분수 - 분수에 오른손으로 왼쪽어깨로 던지는 동전 하나에 로마에 돌아오고,
두번째는 사랑에 성공하고, 세번째는 이혼한다는 바로 그런 애기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하나에 로마에 돌아오고, 두번째는 로마와의 사랑, 세번째는 결혼하게 된다는 애기도 있다.
전세계 사람들은 라틴어(에트루리아 어)에서 파생된 알파벳을 쓰거나 배우려고 노력하고,
유일하게 로마의 제국에 편입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로마문자를 완벽하게 구사하면 '대한민국'에서는
상류계급인 '호네스타스'로 편입될 기회를 얻어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다.
로마의 문명은 유럽의 역사이고, 유럽의 문화는 법규와 제도, 사상과 종교, 심지어 주유소 자판대에서 발견되는
코카콜라의 글자체까지도 영향을 주어 지구상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게 되어 있다.'
스페인 광장 - 17세기부터 바티칸 주재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서 스페인 광장이라 불리우며,
영화 뿐만 아니라 명품거리가 조성되어 많은 이들이 오고간다.
의식주에서 자유로울수록, 문화와 예술, 그리고 소비에서 로마의 영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로마의 휴일'에서 '글레디에이터'까지 헐리웃의 최고 명화들은 로마를 배경으로 로마의 속국임을 자청한다. '아르마니'와 '베르사체'의 신로마군단에 세금을 꼬박 꼬박 바치고 로마제국의 시민이기 갈망하며, '페라리', '람보르기니' 전차를 꿈에 그린다. 아치를 사용한 넓은 공간을 찾게 되고, 대리석 기둥과 신화에 나오는 각종 부조물에 감탄한다. 자신있는 몸매를 흘러내리는 실크감촉은 로마시민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아름다운 깜삐돌리 광장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영화 '글레디에이터' 전반에 등장하는 황제) 기마상
깜삐돌리 광장의 넵튠 분수 - 1536년에 미켈란젤로에 의해 설계된 이 광장은 고대로마시대에 정부의 중심이었다.
시에나에서 자동차로 로마에 진입하니 울려대는 경적소리와 조여드는 자동차 범퍼는 우리나라보다 좀 더 심각하다. 외곽의 주택가 거리에는 부랑자나 일용직 동유럽 노동자들이 먹고 마신 맥주병들이 그대로 굴러다닌다. 10년 전 테르미니 역에서 나왔을 때 붙잡던 집시들은 스페인광장과 트레비분수의 소매치기와 함께 좀 더 지능적으로 여행객을 불쾌하게 만든다. 지하철이 도착하자 서로를 밀치기 일쑤이고, 웃단추 3,4개를 풀어 가슴이 훤히 보이는 직장여성과 그것을 훔쳐보고 손으로 엉덩이를 더듬으려는 양복쟁이에 황당할 따름이다.
나보나 광장 - 다뉴브, 나일, 갠지스, 라플라타 4대 강을 표현한 베르니니의 작품
이들이 유럽을 제패한 로마인들이 맞는 것일까 ? 중부 토스카니 지방의 진지한 에트루리아인들은 적고,
천성적으로 아이를 많이 낳고 인생을 밝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라틴인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판테온 - 판테온의 건축은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이런 거대한 건축을 이루어냈다 것도,
위에 있는 직경 9M의 구멍을 뚫어놓고도 대류현상으로 비가 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도 아닌,
로마시대에서 부터 지금까지 2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지해 온 그 견고함과 그 보존상태에 있다.
'지성은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은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며
기술력은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은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로마인'이라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많은 부분에 동의할지 않을 수 없다.
포로 로마노 전경 - 대부분이 폐허로 변했지만, 타 민족의 약탈에 의한것이 아니라 근대에 들어서 이탈리아 지배층과 정치인들이
자신의 집과 건물을 꾸미기 위해서 훼손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로마가 시작된 팔라티노 언덕밑에 위치한 포로 로마노는 무역, 토론의 장이었고, 로마의 중심이었다. 이곳은 로마의 공화주의자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카이사르(케사르)가 죽은 곳도 이곳이며, 그의 후계를 위한 웅변이 이루어졌던 곳도 역시 이곳이다. 이곳에서 시오노 나나미가 제시한 노블레스-오블리주. 리더쉽, 자치권. 정치가 토론되었다. 아마도, 그곳이 에트루이아인보다 떨어지는 로마인들이 수백년간 대제국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일 것이다.
로마는 옥타비아누스가 제정을 펼치면서 팍스로마나의 역사로 치닫게 된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 이후 정치의 수준이 떨어지면서, 더 이상의 토론과 리더쉽이 없다.
방대한 영토를 관리하기 위한 군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리더쉽은 없고,
원로원의 공화정의 토론은 법의 테두리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포로 로마노의 개선문
시오노 나나미는 불안한 정국에서 그 답을 찾고, 많은 역사가들은 방대한 영토관리와 그리스도교의 부흥을 꼽는다.
또 다른 접근으로는 도덕적 해이와 타락에 두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로마시민과 포로 로마노. 그들은 그곳에서 부족한것을 채우기 위해 참여하고, 토론하였다. 이 점이 그리스인, 켈트인, 에트루리안, 카르타고인과 다른점이었다. 이제 포로 로마노는 폐허가 되었다. 로마시민들의 문화처럼...
진실의 입
Vatican City (1984년 지정)
바티칸은 로마에 위치하고 있으나, 교황청이 전부인 인구 1000여명의 독립국이다.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뛰어난 미술과 조각상 등 예술품을 갖추고 있으며, 르네상스에서 영향을 받은 바로크 양식으로는 세계 최대의 건축물인 베드로 성당과 광장이 있다. (로마나 바티칸을 여행할 때는 가급적 한국인 가이드나 영어 가이드를 신청해서 둘러 보는 것이 효율적이고 자세한 설명으로 이해가 쉽다.)
성 베드로 성당 내부
성 베드로 성당 내부의 천장
이 성당에서 미켈란젤로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생을 마감한다. 고귀함과 엄숙함이 존경을 불러오는 피에타상은 겨우 25살에 완성한다. 세상은 이 천재에게 경악하고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성당의 건축을 맡긴다. 방대한 규모의 성당 중앙의 돔 모양을,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최후의 심판이라는 명작을 남긴다. 바탕 그림의 윤곽선을 따라 작은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먹가루를 칠해서 윤곽선을 완성한다. 그림은 프레스코와 똑같은 크기로 제작하여 윤곽선을 따라 붙였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프레스코화를 4년 동안 혼자서 완성한다. 바티칸 성당은 1981년 부터 14년간에 걸쳐서 이 그림을 복원한다. 일본의 NHK방송국에서 2천 3백만 달러를 지원받고 2007년까지 저작권을 주는 댓가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Pieta) 이탈리아어로 “신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의미
천재는 동 시대의 다른 예술가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미켈란젤로 이후 베르니니가 성 베드로 성당의 광장을 완성하기까지 수십년이 그냥 흘러간다. 베르니니는 카톨릭의 권위를 위해서 성모 마리아가 두 팔을 내밀어서 광장을 끌어안는 둥근 기둥의 회랑을 완성한다.
베르니니가 건축한 성당 광장과 기둥들 - 중간의 특정지점에서 보면 뒷 기둥들이 모두 가려져 하나의 기둥으로 보인다.
이 거대한 건축물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교황청은 면죄부를 판매하고, 마틴 루터는 그 폐단을 지적하는 공개토론을 주장하여 종교개혁이 시작된다. 예술가가 신에 대한 천재성을 발휘하는 동안 중부유럽은 피로 물든다.
바티칸 미술관의 천장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든 유디트
라파엘로 - 아테네 학당 (바티칸 미술관은 라파엘로의 방이 있을 정도이고, 보티첼리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Laocoon 라오콘 - (Troy의 Apollo 신전 사제(司祭); 그리스군의 목마의 계략을 알아냈으나,
두 아들과 함께 Athena가 보낸 해사(海蛇)에 감겨 죽었음) -
루브르가 소장한 밀로의 비너스와 함께 헬레니즘의 대표적인 작품
메두사의 목을 자른 페르세우스
술의 신 바카스
* 벨 베레데 정원의 뜰에 있는 조각상 중 하나를 경매하면 바티칸 시국의 빚을 모두 탕감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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