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사랑/유럽 가고싶은 곳

체코 및 폴란드 관광 볼거리

별을 그리다 2008. 3. 21. 09:34

 

 

 

체코 및 폴란드 관광 볼거리


체코
체코 프라하의 관광거리
■ 바츨라프광장
바츨라프 광장
바츨라프 광장
바츨라프 광장2
프라하의 신시가지의 일각을 형성하는 최대의 번화가이다. 고단한 체코의 역사가 베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하철 A선과 B선이 교차하는 무스테크 역이 있는 무스테크 광장을 중심으로 L자형으로 교차하는 이 광장은 광장이라기보다는 파리의 샹젤리제처럼 "boulevard"를 이루고 있는 바, 넓이는 무스테크 광장에서 국립 박물관까지 길이 750m, 폭 60m의 대로로서 서울의 명동거리에 비 할 만 하다. 거리 양쪽에는 유서 깊은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 백화점, 은행, 사무실들이 늘어서 있고, 휴일에는 늘 인파로 붐비며 여름에는 아래쪽의 무스텍 광장 주변이 노천 까페가 들어선다. 국립박물관의 테라스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면 광장의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의 모습을 자세히 구경할 수 있다

이 광장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말 시장으로 이용되었던 곳으로서 체코 역사의 전환기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장소였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몰락으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이곳에서 선포되었고, 1948년에는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여 사회주의 공화국이 이 곳에서 선언되었다. 1968년에는 두브체크로 대표되는 개혁공산주의자들이 시도한 '프라하의 봄'이 소련군 탱크부대의 침공으로 많은 체코국민들이 생명을 바친 곳으로도 유명하며, 1989년 11월 18일 프라하 예술아카데미의 학생들과 배우들이 공산정권에 항의하는 데모를 시작하여 결국 자유주의를 획득하였던 '벨벳 혁명'의 역사적 현장도 바로 이곳이 중심지였다.
광장의 동쪽 끝에 보이는 중앙청 모습의 건물이 이 나라의 국립박물관이다. 폭 100m, 높이 70m에 이르는 이 박물관은 광물·동·식물 표본 등을 전시한 자연박물관으로서 국립극장, 예술의 전당과 함께 19세기 후반 체코의 네오 르네상스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힌다. 천장과 1층 방에는 체코 역대 유명인사의 그림과 청동 흉상이 전시되어 있다.
광장에서 국립 박물관 쪽으로 서 있는 동상은 보헤미아의 수호신인 성 바츨라프의 기마 상. 성 바츨라프는 국난의 시기에 중부 보헤미아의 그라니크 동굴에 잠들어 있는 기사들을 깨워서 이끌고 적을 격퇴시켰다는 전설의 왕으로서, 기마 상 앞뒤로 3명의 수호성인인 성 루드밀라, 성 프로코피우스, 성 아그네스의 기념상도 함께 볼 수 있다. 이것은 J.V. 미슬베크의 작품으로 예전의 바로크 식 조각을 대신하여 1913년에 이 광장에 들어섰다. 현재는 동상 아래에 각종 무대가 마련되어 있어 정치 집회나 콘서트 등이 열리고 있다. 동상 앞에는 '프라하의 봄'을 탄압하던 소련군에 저항하다 희생된 사람들(특히 21세의 나이로 분신 자살한 챨스 대학 학생 얀 파라프palach)과 1989년 혁명 당시를 기하는 꽃과 촛불, 사진들이 항상 놓여있다.
* 가는방법 : 지하철 A선과 B선이 교차하는 무스테크 역에서 하차
■ 성 비트 대성당
성 비트 교회3
성 비트 교회3
성 비트 교회24
성 비트 교회35
프라하 성의 중앙에 위치하며 왕궁을 바로 앞두고 있다.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외관은 독일의 쾰른 대성당과 흡사하다. 1344년 카를 4세에 의해 짓기 시작하여 1929년에 완성된 긴 역사를 자랑한다. 로마네스크에 고딕을 더한 이 성당으로 인해 프라하 성이 성속을 아우르는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건축가 마티아스가 현재의 비트 성당을 착공하기 시작하였다. 공사 도중 마티아스가 죽자 건물의 모양은 후기 고딕양식으로 다시 바뀌었다. 그를 이어 당시 23세였던 피터 팔레지가 작업을 계속했다. 팔레지의 작업으로 돋보이는 것은 회중석 및 상가 대리석 측의 아치와 고창 사이에 있는 21개의 흉상(카를 4세의 가족)등으로 팔레지가 혼신의 힘을 다했던 작품이다. 결국 팔레지도 이 성당을 완공하지 못해 그의 아들에까지 작업이 이어졌다. 후스의 종교개혁 때 작업이 중단되다가 16세기 중엽 주 첨탑 부분이 르네상스식으로 그 후 100년 뒤 양파모양을 한 지붕이 바로크식으로 건축되었고, 1929년 신 고딕양식인 현재의 이 성당은 복합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성 비토 성당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수호성인이 된 국왕 바츨라프 1세와 관련이 있다. 고결한 군주로서 살다 929년 그의 동생 볼레슬라프에게 암살 당했는데 그의 무덤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문에 놀란 이 암살자는 932년 그의 유해를 이 성당으로 옮겨왔다. 바츨라프 1세는 암살 직후부터 보헤미안의 수호성인으로 추앙 받았으며 성비트 성당은 오랫동안 순례지가 되었다.

교회의 내부는 안쪽 길이 64m, 폭 46m, 높이 46m나 된다. 성당 안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환상적인 색채와 형재로 보헤미안 특유의 푸르고 붉은 유리공예가 세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한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유럽 어느 성당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정면의 글라스 밑에 이 성당을 완공할 당시 사람의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구 왕궁과 성 비트 교회 사이를 빠져나오면 이지 광장이 나오게 되는데 이 곳에는 백색 첨탑을 두 개 이고 있는 성이지 교회가 있다. 성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에 따라 목재를 사용한 보기드믄 천장이 인상적이다.
■ 천문시계
프라하천문시계1
프라하천문시계1
프라하의 명물 천문시계(ORLOJ)는 15세기 프라하 대학의 수학교수였던 하누슈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기발하고도 아름다운 시계에 대한 소문이 유럽 각 국으로 퍼지면서 다른 나라에서도 주문이 쇄도하였다. 그러자 이 시계를 독점하고 싶은 프라하 시청에서는 하누슈 교수가 두 번 다시 시계를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를 장님으로 만들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자신이 만든 시계를 만져보기 위해 시계탑 위에 올라가 시계에 손을 댔을 때 시계 바늘은 그대로 멈추어 400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1860년 수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카를교
카를교 위의 관광객
카를교 위의 관광객
카를교 위의 조각
카를교를 지나가는 행인들
카를교 위의 조각품
블타바Vltava(우리에게는 몰다우Moldau로 알려져 있음)강 위에 서정과 낭만이 가득한 황혼을 배경으로 펼쳐진 다리가 카를 다리(챨스 브리지Chales Bridge)이다. 1357년 건설하기 시작하여 1406년 카를 4세에 의해 완공되었다.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 현존하는 유럽 최고의 다리로 손꼽힌다. 이곳에는 예전에 유디타 다리Juditin most라는 이름의 다리가 있었으나 1342년의 홍수로 소실된 이후 당시에 최고 수준의 기술을 동원하여 새롭게 세운 것이 카를 다리라고 한다. 길이 520m, 폭 10m의 보행자 전용으로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언제나 노점상과 거리의 예술가, 관광객들로 붐 빈다.

다리의 가장 큰 특징은 조각상이 양측 난간에 15개씩 합계 30개가 늘어서 있다는 것이다. 로마 산탄젤로 성에 있는 베르니니의 조각에서 힌트를 얻어 1683년부터 프라하의 기독교 순교 성자인 중요한 네포무크의 조각상을 시작으로 기독교 성인 30인의 조각상(사암을 사용)을 다리 난간에 세우게 되었다. 이 다리가 세워진 후 점진적으로 카톨릭은 중세 생활권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으로 입지를 굳혀 갔다. 17~19세기에 걸쳐 제작된 이 동상들은 성서를 주제로 만들어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다리의 양끝에는 총 3개의 탑이 있다. 그 중 프라하 성 쪽으로 두 개의 탑이 있고, 구 시가 쪽으로 하나의 탑이 있다. 프라하 성 쪽의 두 탑 중 조금 낮은 탑은 주디교의 잔재로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지은 것이며, 키 큰 탑은 15세기의 고딕양식으로 지은 것이다. 구 시가지 쪽의 탑은 14세기에 만든 것으로 유럽 고딕양식의 최고봉에 속한다. 이 탑들은 원래 통행료를 징수하거나 다리를 지키기 위하여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일반에게 개방되어 있다.
다리를 건널 때는 프라하 성 쪽을 향한 난간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다리 중간쯤의 난간에 독특한 모양의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그 위에 손을 얹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만지고 가기 때문에 그 부분만 반들반들 윤이 나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카를 교에 석양이 비치며 떠오르는 실루엣을 프라하 성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다. 여름 밤에는 다리 곳곳에서 노래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터 놓은 자유공간,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우정을 나누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
■ 틴교회
틴교회
틴교회
틴교회 첨탑
구 시청사 맞은편, 킨스키 궁전 바로 옆에 위치한 틴 성당은 하늘을 찌를 듯한 멋진 첨탑이 인상적이다. 1365년 세워진 이 교회는 금장식을 정점으로 하는 두 개의 탑이 높이 80m에 이른다. 화려한 외관은 초기 고딕양식을 띠고 있지만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음울한 분위기이다. 이 교회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북쪽 벽에 있는 로코코 스타일의 거대한 제단과 아름다운 동북쪽의 출입문이다. 이 곳에서는 종종 클래식 콘서트가 열리며 특히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가 기막히다.

교회 바로 옆에는 카프카의 생가도 있다. 체코 계 유대인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가 1883년에 태어난 곳이다. 카프카는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현대인의 고립과 불안을 묘사한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적 작가이다. 독일에서 활동하다 빈에서 죽은 기구한 운명을 가진 작가로 그의 작품 '변신', '심판', '성' 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가 볼만한 곳이다. 그와 관련된 자료 및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 프라하성
프라하 성
프라하 성
프라하성 근처
건축의 도시 프라하의 심장이 되는 곳이 프라하 성이다. 체코를 찾는 이들의 대부분이 프라하 성(특히 야경)을 보기 위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프라하 관광의 핵심이 된다.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과 르네상스, 바로크, 네오 고딕에 이르는 천년 이상의 건축사를 웅변한다. 체코의 국가적 상징물인 동시에 통치자들의 궁전으로 870년경 처음 건축되기 시작된 이래 수 차례의 변천을 거쳐 14세기 카를 4세 때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18년 이후로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성 정문 앞에서는 매시 정각에 근위병들의 교대 식이 행해진다. 이 중 정오에 벌어지는 교대 식이 가장 볼 만하다. 이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파노라마는 프라하의 역사를 건축미술을 통해 한 눈으로 읽게 해주고 있다.

길이 570m, 폭 128m인 프라하 성은 전 세계의 현존하는 중세양식의 성 중 가장 큰 규모이다. 프라하 성이 현재의 중요성을 갖게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14세기 카를 4세(1346~78년 재위)때의 일이다. 그는 왕궁을 재건하고 성 비토의 성당을 세우면서 프라하 성을 완전히 새로운 모양으로 단장하는데 이 때부터 이 성은 국가적 상징물이 되었다. 15세기 말 국왕이었던 블라디슬라프 2세 치하에서 후기 고딕 양식적인 요소가 가미되었고, 1526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보헤미아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했을 때부터 르네상스 적인 건축이 프라하 성을 점점 복잡하고 정교한 것으로 말들었다. 프라하 성의 건축 양식상 완결은 바로크시대에 이루어졌다. 1753년~1775년 사이에 외관은 현재와 같이 결정되었고, 1918년 대통령의 관저로 바뀌면서 건축가 Josip Plecnik에 의해 성의 내부장식과 정원이 새로 정비되었다.

프라하 성은 수많은 건물들이 모여 하나의 로열 타운을 이루고 있는데 중심 건물은 성 비토 성당이다. 정문에서 바로크 빌딩으로 둘러싸인 게이트를 두 번 지나면 나온다. 카를 4세 때 부터 짓기 시작한 성비토 성당은 50년 이상에 걸친 네오 고딕양식(1873~1929)의 가미와 함께 약 6백년의 공사기간을 기록하며 완성되었다. 내부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뛰어나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체코의 화가 알폰소 무하의 그림으로 1936년에 만들어 졌다. 성내의 다른 기념물로는 성내에서 가장 오래된 성 이르지 교회가 현존하고 있다. 성 옆의 계단 위에 서면 유유히 흐르는 블타바강과 아름다운 프라하 시내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관광안내센터에서는 프라하 성의 간단한 지도 및 관광자료(주로 영어 표기)를 제공하는 이외에 기념품이나 선물 용품 등도 판매하고 있다.
* 가는방법 : 프라하 성까지는 말라스트라나에서 언덕을 올라가 이동하는 방법이 가정 일반적이다. 말라스트라나 광장에서 네르다 거리로 들어가 걷다가 도중에 커다랗게 꺽어진 Ke Hradu거리의 언덕을 끝까지 올라가면 프라하 성 입구인 흐랏챠니 광장이 나타난다.
■ 황금소로
황금 소로31
황금 소로31
황금 소로22
황금 소로4
이르지 교회에서 북쪽으로 나아가면 접하게 되는 작은 거리이다. 화이트 타워 아래 담벼락을 내려가듯이 걸어가면 도중에 왼쪽으로 꺽어진 골목길이 보이는데 그 길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색색의 작은 집들이 늘어서 있는 동화 같은 거리가 나타난다. 이 곳이 바로 그 유명한 황금소로이다.

1520년대 처음 프라하 성을 지키는 군인들 막사로 사용되다가 루돌프 2세 때 연금술사들 및 금은 세공사, 성의 일꾼들이 살았다 하여 황금소로(골든레인)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모든 건물이 작고 아기자기한 모양이며 입구는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집이 대부분이다. 현재 이 일대의 건물들은 대부분 선물 가게로 이용되고 있으며, 레코드 가게나 서점 등도 있다.

그 중 19번지는 하벨 대통령 부인이 세운 '올가 재단'에서 경영하는 선물가게이며, 까맣게 칠한 22번지의 집이 '프란츠 카프카'가 잠시 침거 하였던 곳이다. 이곳은 카프카의 막내누이 오드라가 구 시가의 시끄러운 곳에서 어려움을 겪는 오빠 카프카를 위해 마련한 곳으로 1916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카프카는 이곳에서 매일 늦게까지 일하고 밤에는 구시가 랑케 거리 18번지에 있는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 'Cathle'은 바로 프라하 성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며 많은 단편도 이곳에서 집필했다. 키다리였던 카프카는 '살기에 불편하긴해도 내게는 딱 알맞은 집'이라고 했다는데 더욱 정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폴란드
폴란드 크라카우의 관광거리
■ 바벨성
바벨성 경관
바벨성 경관
뒤에서본 바벨성
바벨성과 유람선
바벨성 설경
구시가지의 남쪽 비슬라 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는 바벨성은 500년동안 폴란드 왕이 거처했던 둥전으로 유명하다. 성의 역사는 9세기 초부터 시작되며,1502~1536년에 걸쳐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 전화/팩스 : 전화/팩스 : +48 12 421 5177
* 주소
Wawel Royal Castle
31-001 Kraków, Wawel 5

* 홈페이지주소 : http://www.wawel.krakow.pl
■ 비엘리츠카
비엘리츠카1
비엘리츠카1
비엘리츠카2
비엘리츠카3
비엘리츠카4
크라코프에서 남동쪽으로 13km 거리에 있는 비엘리츠카는 암염이 생산되어 온 곳이다. 약 10세기에 이 곳에 소금 제조장이 있었던 흔적이 발견되었고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암염이 생산되는 곳으로 소금바위가 많아 지하 100미터 정도에는 전시장이 만들어져 있는데 9시부터 4시까지 열린다. 전시장에는 비엘리츠카으 역사와 소금 파내는 방법을 보여주는 전시실이 있으며, 소금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조각품과 예배당도 있다. 여기에는 14개의 작은 방이 있고 그 안에는 소금 바위 전시장, 복도, 예배당, 수많은 조각품들이 있다. 크리스탈 동굴은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것으로 1928년 이래로 염격하게 보호되고 있다.
비엘리츠카로 가는 교통편은 기차역 앞에서 운행되는 소형버스를 이용한다. 700년의 역사를 가진 이곳은 크라쿠프의 남동쪽으로 1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자동차로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 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 수용소
아우슈비츠 수용소
아우슈비츠 수용소2
아우슈비츠 수용소3
아우슈비츠 수용소4
크라쿠프 서쪽으로 61km 떨어진 곳에는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히틀러의 악명이 높은 폴란드어로 "오쉬비엥침"이라고 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세워져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전체 28동으로 되어 있고 150만명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빨간 벽돌건물들로 되어 있으며 현재는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는데, 유태인을 처형했던 가스실과 처형당한 사람들의 사진, 시체를 태웠던 소각장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비극의 역사를 생생하게 느낄수 있다.
아우슈비츠는 1947년에 세워진 희생자 박물관은 1979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의 철문에는 독일어로 ARBEIT MACHT FREI(일하면 자유로워진다.)라고 써있고 그 유명한 나치가 개발한 가스는 한 통으로 400명을 죽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 중앙광장
중앙광장
중앙광장
중앙광장2
중앙광장3
중앙광장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