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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의 옛성터--욕지산 답사기

별을 그리다 2008. 4. 1. 12:44
성자산 북쪽정상에서 본 욕지산
 
8월 5일 연우산악회를 따라 성자산으로 갔다가 북쪽으로 보이는 산이 욕지산이라는걸 알았다.
들은바에 의하면 욕지산은 여진족의 옛 활동무대라고 하는데 역사가 유구한 천년고성(古城)이며 산꼭대기에는
칠팔백년 역사를 가진 늪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였다.
성자산성은 고구려시기에 구축되여 발해 료 금 시기를 거친 천년고도(古都)이다.
이러한 성자산과 골짜기 하나를 사이둔 욕지산에 늪이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욕지산이나 성자산은 모두가 역사가 유구한 옛 성터이다.
이러한 유구한 역사를 둔 옛 산성을 눈앞에 두고 당장 가보지못하는게 못내 한스러웠다.
그래서 8월 10일 머리도 쉴겸 나 혼자서 욕지산 산행을 하게 되였다.
 
15선 뻐스를 타고 구하동에서 내려 북쪽 산등을 넘어 욕지산을 가게 되였다.
구릉하나를 넘으니 마주보이는 산이 곧 욕지산이다.
 
욕지산(좌)과 성자산사이의 골짜기
 
북쪽 산마루에 욕지산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
 
 

욕지산을 오르면서 동쪽으로 보이는 마반산릉의 아름다운 각선미

 
욕지산성에 들어서니 노인 한분이 계시는 인가가 있었다.
 
노인과 간단히 얘기를 통하고 곧게 늪으로 향했다. 이것이 팔백년역사를 가진 옛늪이다.
직경은 10메터 좌우 깊이는 한메터 반 된다고 하는데 고인물은 아직도 맑다.
팔백년이 되도록 늪이 마르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물량이 풍족한 샘터가 되는 셈이다. 
역경에 물과 산은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높은 산에 샘물이 있다는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물이 있는산은 모두 명산이다
 
 
산성 대문앞에는 옛 성터 받침돌이 10여개가 원을 지어 있었다 
노인의 말에 의하면 성자산은 금조때의 성새였고 이곳 욕지산은 여진족의 성새였다고 한다.
이 돌들은 옛 궁전터의 받침돌이라고 하였고 북쪽 정상에는 또 봉화대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얘기를 나누다말고 봉화대를 먼저 가보기로 하였다. 노인네가 지금 봉화대쪽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옛날 봉화대!
전쟁이 나거나 큰 사건이 일어나면 여기에다 불을 지폈으리라.
여기서 북쪽으로 10여리가면 또 하나의 봉화대가 있었고
연길의 모아산과 유수촌의 옛 산성봉화대는 서로가 볼수있는 봉화대들이다.
그러니깐 옛날부터 여기 연변땅은 여기저기  부락 부락들로 나뉘어 서로 통신할수있는 옛성새들로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것이다.
땅은 유구한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땅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역사는 항상 지배자에 의하여 왜곡되기 마련이고 진실함은 항상 땅속에 묻혀있는 법인듯하다
 
봉화대 아래에 2메터넘게 깊숙히 파인 구뎅이, 왜서 파였는지는 모르겠다
 
욕지산 북쪽정상에서 본 성자산성내(城內), 가운데 푹 패인곳이 성자산 성내다.
옛날에는 저 산마루에 장성이 보였을것이고 보초병이 서있었을것이다. 
욕지산에서 성자산을 마주하고 서니 심정이 감개무량하다.  자기도 모르게 성주풀이 곡조가 흘러나왔다. 
 
낙양성 심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가면 저 모양이 될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북쪽 정상에서 내려다본 마반산 아름다운 절경, 붉은 집이 있는곳이 마반산 기차역
 
오른켠으로 연길에서 성자산을 에둘러 흘러오는 부르하통강
 
욕지산 아래에 와서 U자형으로 굽이쳐 흐른다.
 
 
 
 
마반산과 왼쪽 산릉
 
욕지산에서 보는 연길시전경
 
서북쪽의 부흥촌과 광흥촌
 
부흥촌위에있는 욕지산 서북쪽켠의 봉화대
 
욕지산을 둘러보고 사면이 시야가 확트이여 여기는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든다.
속세가 싫다면 이러한 곳에서 한가이 도나 닦고 싶다.
인생이 얼마라고 쓸데없는 짓거리나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죽으면 다 그뿐인데...... 그 무슨 부귀영화 쓸데가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