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용
무사용(武士俑)은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데..
이들은 호위임무를 하고 있다
도끼를 들고있는 무사는 그냥 위협용으로 보인다
당시 기록을 보면 공작이하 현령이상의 관리들이
외출를 할 경우 도끼를 든 무사들이 호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도끼무사용
이 무덤 출토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지금 중국여행사 마크로 우려먹고있는
마답비연(馬踏飛燕)입니다
이는 실크로드의 개척자인 장건(張騫)이 10년의 유랑
생활을 마치고 장안으로 돌아와 한무제에게 보고했던
이야기에서 연유하고 있습니다
이 마답비연에는 한무제가 그토록 원했던 피같은 땀을
흘리며 제비처럼 빠른 말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말을 얻기위하여 한무제는 서쪽으로 군사를 계속
보냈고 무위같은 변방에 이런 당시 일급 유물들을 묻을
수 있는 거물들도 살게 되었으며 그 기세에 흉노족들은
훈(Hun)족으로 동유럽에서 다시 그 모습을 보일때까지
이때부터 서진(西進)에 서진을 거듭하게 됩니다
은제봉수병(유金銀壺)
중앙아시아지역에
그리스 원정군들이 세운 박트리아(Bactria)라는
왕조의 유물이다
높이 37.5cm 영하고원박물관 소장
1983년 영하회족자치구에 있는 북주(北周)의
개국공신인 이현의 무덤(569년에 사망)에서 나왔다
당시 이런 종류의 주전자가 서역으로부터 들어와
호병(胡甁)이라고 불리워지면서 민간에 많이 퍼졌다는
기록이 있다
박트리아왕국은 월지족(月氏族)에 의해 망해 쿠샨왕조로
대체되게 됩니다
월지족은 한나라의 장건이 흉노를 치기위해 그토록 찾아
돌아다녔던 민족입니다
이 월지족의 영어발음인 Asii 혹은 Assioi에서
아시아(Asia)라는 말이 나왔다고 하는군요
청화연화존(靑瓷蓮花尊)
남북조시대때 북조(386-581)의 유물
높이 63.3cm, 구경12.2cm, 밑바닥 직경20.2cm
연꽃무늬 청자
1948년 하북성 출토, 중국국가박물관 소장
당시까지 청자를 만들때 이용된 기법들이
이 한 작품에 다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이 청자에서는 '6'이라는 숫자가 강조되고
있는데 목에서 어깨에 이르는 부분에는 둥근 고리
모양같은 것을 여섯개 붙였고 병목 위쪽 부분에는
꽃 여섯송이를 새겨넣었으며 아래쪽에는 짐승 여섯
마리의 무늬가 보인다
이 무렵부터 외래종교인 불교가 중국에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 연화문 장식으로 알 수가 있다
존경할 존(尊)자가 술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청자의 부분확대 사진을 보죠
아래부분, 연꽃이 두층에 걸쳐 보입니다
윗부분,병의 마개를 왕관처럼 만들었습니다
바닥부분, 틀에 올려놓고 만든 흔적이 보입니다
낙타 도용(陶俑)
수나라때 유물 산서성 고고학연구소 소장
높이 45.5cm
강건한 낙타의 모습이다
낙타의 두 혹사이에는 비단과 가죽주머니를 실었다
가죽주머니는 호랑이 머리 도안으로 장식했다
가죽주머니 위에 앉은 사람은 호인(胡人)으로 짙은
눈썹에 눈이 움푹패여있고 코가 높으며 머리에는
둥근 펠트모자를 쓰고 있다
한쪽 다리는 길게 뻗었고 다른 다리는 구부리고
있으며 한쪽 손은 채찍을 들고 있고 다른 한손으로는
먹을 것을 들고 무언가를 먹고 있는 장면을 나타냈다
실크로드를 분주하게 다니면서 낙타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했던 케러반들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나타내고 있다
일본에서 전시회를 하였을 때 이 유물이 대표유물이었다
사람얼굴과 소머리 형상용기(人首牛頭形陶飮器)
1976년 신장 위구르자치구에서 출토, 신장박물관 소장
진흙으로 빗어 만든 용기
위는 사람얼굴이고 아래는 소머리로 사람은 역시
호인(胡人)의 모습을 하고있다
사람 머리의 정수리부분에는 물을 받을 수 있는
주둥이 부분이 있고 담긴 물은 아래 소의 입을
통해서 필요에 따라 조금씩 쓰게 되는 구조이다
채색천왕목용(彩色天王木俑)
당나라(618~907) 유물
높이 86cm
1973년 신장 투루판에서 출토, 신장박물관소장
불교의 호법신인 천왕은 불교가 중국화되면서
중국무사처럼 변해가는 경향을 보인다
이 유물은 악귀를 물리치는 천왕의 능력을 민간에서
받아들여 무덤 양쪽에 천왕을 놓아 능을 지키는
인형으로 천왕을 쓴 경우이다
비단치마를 입은 여인상
당나라(618~907) 유물
높이 29.5cm
신장 투루판에서 출토, 신장박물관소장
위에는 소매가 좁은 비단저고리를 입고 있으며
황색의 어께걸이를 둘렀고
하의로는 붉은 노란색의 긴치마를 입고있다
얼굴에는 붉은색 분으로 볼을 발랐으며
이마에는 꽃무늬 모양의 화전(花鈿)을 붙였고
보조개(酒窩, 중국말로 보조개가 '술 둥지'입니다)를
그린 다음 붉은 입술을 그리는 당나라때 가장
유행하였던 화장법을 볼 수있다
백옥 팔찌
당나라(618~907) 유물
너비 2cm,직경 8cm
금을 장식한 옥팔찌이다.
1970년 서안에서 출토, 협서성박물관 소장
길이가 같은 굽은 세마디의 백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 마디의 백옥 양쪽에는
호랑이 머리 형상을 한 금장식을 끼워넣고
이를 2개의 금못으로 고정시켰다
청유봉두용병호(靑釉鳳頭龍柄壺)
당나라(618~907) 유물
높이 41.2cm
푸른색의 유약을 발러 청유(靑釉)라 하며
전체적으로는 회색이 나는 주전자이다
주전자의 뚜껑이 봉황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으며
봉황의 윗부리는 아래 부리와 딱 맞게 만들어져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곧게 선 봉황의 모습이다
여기에 용모양의 손잡이가 달려있다
용은 뚜껑의 가장자리를 물고있는 형상이고
용의 앞다리는 주전자의 어깨부분을 잡고있고
뒷다리는 주전자 받침을 밟고 있는 모습이다
주전자의 배부분은 2부분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위쪽은 연주문으로 장식한 6개의 원을 만들고
그 안에 춤추는 호인의 모습을 담았고
아래부분은 꽃잎 6송이를 장식하였다
석불입상
남북조시대때 북제(北齊,550-577)의 유물
1996년 산동성 청주시 용흥사 유적지에서 발견
산동성 청주시 박물관 소장
미국 메트로폴리탄 전시때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모았다는 불상입니다
중국에서 6세기 정도면
불상의 의상도
중국화된 포복식(袍服式) 불의(佛衣)가 나올 때지만
이 불상은 굽타양식의 전통을 그대로 따른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육계와 나발(소라껍질 모양으로 돌라 올라간 머리칼)의
분명한 표현, 축 늘어진 귀볼, 수려한 용모에 윤곽선이
분명한 이목구비, 긴 목과 늘씬하게 빠진 팔다리, 큰
눈을 반쯤감아 내리뜨면서 신비스러움과 간결함까지
갖춘 기념비적인 불상입니다
이때 얻은 별칭이 '동방의 비너스'라고 합니다
관음보살상
채색 묘수(墓獸)
당나라(618~907) 유물
사람얼굴묘수 90.5cm 짐승얼굴묘수 75cm
1972년 신장 투르판시에게 발견
묘수(墓獸)란 무덤앞에서 위치하면서 각종 악귀나
부정한 기운을 몰아내는 역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기마여용(騎馬女俑)
당나라(618~907) 유물
높이 39cm
1973년 신장 투르판 출토, 신장 박물관 소장
당나라때 궁인(宮人)들은 외부 출입시 말을 타고
앞으로 늘어내린 모자를 착용하였다고 한다
이 용(俑)은 당시 귀족 여인의 행차 모습을 보여준다
옥혁대
당나라(618~907) 유물
총 길이 1m50cm
1992년 협서성 장안현 출토, 협서성 박물관 소장
가죽띠 위에 옥조각들을 얹어서 만들었으나 가죽은
없어졌고 옥조각만 남아있음
옥조각안에는 얇은 금판을 대고 그위에 붉고
파랗고 푸른 보석들로 장식을 하였다
은잔
당나라(618~907) 유물
1970년 서안시에서 발견, 협서성 박물관 소장
높이 6.7cm, 구경7.4cm
8각으로 잔을 만들었고 둥근 손잡이를 붙였다
호인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8면에 걸쳐서
잔에 부조하여 놓았다
금완(金碗)
당나라(618~907) 유물
높이 5.5cm, 직경 13.5cm
대접 바깥쪽에는 10개의 연받침으로 이뤄져있고
각각 물고기, 동물들 인동초, 구름 문양이 들어가 있다
안쪽에는 연꽃들이 새겨져있다
아래모습
금목걸이
수나라 대업(大業)4년 (608년) 유물
길이 43cm
1957년 서안시 출토, 협서성 박물관 소장
북주(北周)의 황태후가 외손녀에게 선물로 준 것임
금실로 만든 28개의 구슬로 이뤄져있고 매 구슬마다
10개의 진주가 표면을 장식하고 있다
앞에 보이는 붉은 색의 보물은 마노이고 맨아래
계란형의 보석은 신비의 진주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