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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대하던 공자와 마르크스 부활시켜

별을 그리다 2008. 3. 30. 10:41
중국, 홀대하던 공자와 마르크스 부활시켜

시장경제의 부작용 커지고 공산당 정체성 위협 받자 이념적 대안으로 채택
조화론·인본주의 등 공자 학습 붐... 마르크스 연구에 학자 3000여명 투입

▲ 중국 공산당이 제작한 마르크스 탄생 100주년 기념 포스터.
공자와 마르크스가 21세기의 중국에서 두 손을 잡았다. 묘한 만남이다. 공자(孔子·쿵쯔·기원전 552~479년)는 20세기의 중국에서 ‘도구(盜丘·도둑놈)’로 지탄 받았다. 특히 홍위병은 197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에 “마오쩌둥(毛澤東) 사상의 장애가 되고 봉건주의와 자본주의를 상징한다”고 공격했다. 홍위병은 공자의 고향인 산둥(山東)성 취푸(曲阜)에서 공자묘를 불사르기도 했고 공자와 린바오(林彪) 전 국방부장을 싸잡아 ‘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을 전개했다. 홍위병은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는 마오 주석의 강화를 받들어 ‘조반유리(造反有理)’를 부르짖었다. 기존 질서는 붉은 깃발 아래 부정됐고 모든 혁명적 선동과 가치의 전복이 정당화됐다. 문화대혁명 시대는 지난 2300년을 전통으로 내려온 공자와 그의 가르침인 유교의 수난시대였다.

문화대혁명에 앞서 청조를 멸망시키는 20세기 최초의 혁명인(제 1혁명) 1911년 신해혁명을 맞으면서 루쉰(魯迅) 등은 공자를 중국의 봉건적 누습의 근원이라고 공격했다. 1919년 5·4운동 때 사상가 오우(吳虞)는 중국을 망친 주범으로 공자를 손꼽았다. 20세기 중국인에게 공자는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구질서를 대표했다. 몰락해가던 중국을 강한 국가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공자는 철저히 파괴할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공산주의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도 20세기 후반의 중국에서 배척되다시피 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마르크스주의도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과 ‘선부론(先富論:부유할 수 있는 사람부터 부유해져라)’은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은 후계자인 장쩌민(江澤民) 주석에게 그대로 이어졌으며 장 주석은 이를 ‘3개 대표론’으로 발전시켰다. 장 주석의 3개 대표론은 “중국 공산당이 선진 생산력(자본가), 선진문화 발전(지식인), 광대한 인민(노동자·농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는 공산당이 주요 사회세력으로 성장한 자본가와 지식인을 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개 대표론은 2002년 11월 열린 16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공산당의 당장(黨章)에 삽입됐다. 새 당장의 총강(總綱·전문)에는 ‘중국 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과 3개 대표 중요 사상을 당의 행동지침으로 삼는다’고 명시했다. 3개 대표론은 이어 2004년 3월 중국의 지도이념으로 헌법 전문(前文)에도 들어갔다. 특히 중국이 시장경제 체제를 더욱 강화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는 갈수록 설 땅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마오쩌둥(왼쪽)과 마르크스의 동상.
이처럼 그 동안 홀대받던 공자와 마르크스가 중국 제4세대 지도자인 후진타오(胡錦濤) 시대를 맞아 부활하고 있다. 이들의 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공산당 제4세대 지도부의 통치 이념에 따른 것이다. 중국에서는 그 동안 개혁·개방 정책과 시장경제체제의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2021년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계기로 초강대국의 반열에 진입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는 공산당 지도부로서는 무엇보다 체제안정과 질서유지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공산당 지도부는 빈부 및 도농 간 격차, 부정부패, 사회불안 등 고속성장에 따른 모순과 갈등을 치유하고, 당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수단으로 공자와 마르크스라는 상반된 카드를 내놓은 셈이다. 중국이 ‘현재의 문제’를 역사의 인물이나 이념을 통해 해결하고 미래를 위한 비전으로 이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공자와 마르크스의 부활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후 주석이 지난해 3월 제10기 전국인민대표회의 제3차 회의에서 통치이념으로 쥔푸(均富)론과 조화로운 사회건설이라는 허세이(和諧·조화)론을 제시한 이후 공자가 중국에서 화두가 됐다. 이 이념의 골자는 안정적인 사회발전 속에서 부(富)의 분배가 골고루 되는 균형성장을 이루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행해온 성장위주의 발전전략을 지속하되 그 동안 성장과정에서 소외됐던 농촌 및 내륙지역 주민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후 주석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맞는 중국의 역사적인 전통을 강조하면서 ‘조화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공자의 말을 거론했다.

이후 중국 지도자들은 기회만 생기면 공자 어록을 들먹인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공자의 유교사상이 최근 중국에서 화려하게 재조명되고 있다면서 ‘공자 2.0-베이징의 최신무기는 고대 권위의 상징’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게재했다.(2006년 3월 20일자) 이 잡지는 중국 지도부가 ‘조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이념적 대안으로 공자를 부활시키려는 노력을 차세대 인터넷으로 각광받는 ‘웹 2.0’에 비유했다.

중국은 최근 시장개혁과 경제발전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사회적 불안이 높아지고 있으며 특히 농촌지역에서는 관료의 부패와 토지수용, 빈곤 등으로 불만이 폭발 직전인 상황이다. 중국 지도부도 이 때문에 올해부터 시작되는 제11차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의 초점을 도농 간 격차 해소에 맞췄다. 뉴스위크는 중국 공산당이 이 같은 부작용에 대한 처방으로 중국 전통문화의 정수(精髓)인 공자의 유교사상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권위에 대한 경의, 위계관계의 복종 등 유교적 가치도 현재의 통치구조에 부합한다.

후 주석이 내세우는 인본(人本)과 친민(親民)주의는 공자의 핵심 사상인 인의(仁義)와 맥을 같이 한다. 후 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서양 중심의 현대화에서 벗어나 전통 중화사상으로 새롭게 중국의 좌표를 설정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이는 사회주의 이념의 퇴조로 통치 이데올로기의 빈곤에 직면한 중국 공산당이 유교문화를 토대로 하는 중화 민족주의를 전환기 중국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삼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는 ‘중국 공산당이 타도해야 할 봉건 잔재 1호’였는데 이제는 ‘중화의 스승’으로 새롭게 부각되는 셈이다.

▲ 공자 탄생 기념행사를 하고 있는 모습.

중국 정부는 지난해 9월 28일 공자 탄생 2556주년을 맞아 공자의 고향인 산둥성 취푸에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열었다. 중국 국영 중앙방송(CCTV)은 사상 처음으로 공자 제사를 4시간 이상 생중계했고, 중국 전역에서 논어 낭송 경연대회 등 각종 전통 유교문화 행사가 개최됐다. 지난해 9월 베이징의 런민(人民)대학에는 유학을 중심으로 고전을 연구하기 위해 국학원이 설치됐다. 공산주의 혁명이 한창이던 1937년 세워진 이 대학은 공산주의 이념을 학문적으로 떠받쳐온 곳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은 지난해 6월 ‘유교연구중심’이란 연구소를 세웠다. 최근까지 18개 대학이 공자 관련 연구소나 학과를 개설했다. 초등학교에서도 공자 학습이 한창이다. 논어나 사서삼경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일반인도 늘어났다.


▲ 중국공자기금회가 제작한 공자상 시제품.
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는 200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공자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또 지방행사로 그쳐온 ‘공자문화제’가 지난해에는 국가 차원으로 승격됐다. 홍위병이 파괴했던 공자상(像)을 새롭게 제정하는 움직임도 있다. 산둥성 문화산업박람회 조직위원회와 중국 공자기금회는 지난 1월 공자 표준상 제정을 결정하고 그 동안 표준상의 바탕이 될 기존의 화상(畵像) 및 조소상(彫塑像) 등을 공모했다. 공자기금회는 지난 6월 이를 바탕으로 만든 공자의 표준 조소상 시제품을 공개했다. 또 공자 가문의 대동보(大同譜)를 만드는 작업도 한창이다. 공자 가문의 족보 편찬사업은 60년 주기로 대규모 증보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번 족보 편찬은 60년 주기 사업이면서 역사상 대규모 증보로는 5번째이다. 이 때문인지 중국인은 너도나도 자신이 공자의 후손임을 입증하려고 DNA 검사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히 ‘공자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해외에도 공자를 선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문화원 역할을 담당할 ‘공자학원’을 설립하고 도덕과 평화를 강조하는 외교적 이미지 전파에 나서고 있다. 교육부가 직접 관리하는 공자학원은 공자 사상은 물론 중국어와 중국 전통문화를 알리는 문화선전 기구다. 공자학원은 2004년 11월 서울에 처음으로 설립된 이후 지난 6월까지 미국, 독일, 케냐 등 60여개국으로 늘어났다. 중국은 앞으로 2010년까지 모두 100여개를 더 세울 예정이다. 중화사상의 모태인 유교를 외국에 전파함으로써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팍스 시니카·Pax Sinica)를 형성해 보려는 속셈도 있다. 일종의 소프트 파워의 전파라고 볼 수 있다.

▲ 장쩌민(오른쪽)과 후진타오가 악수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의 통치 이념은 법에 의한 통치와 도덕에 의한 통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치세이념으로 탄생한 제자법가의 사상은 진시황이 법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유교를 포함해 다른 모든 사상을 배척했다. 하지만 진시황의 강력한 법에 의한 통치는 민중의 반발을 사게 되고 진이 멸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한나라 때부터 유교에 기초를 둔 도덕에 의한 통치를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 물론 거대한 중국을 다스리는 데 유교만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전면에는 유교를 내세우면서 내부적으로는 법치를 강화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또 하나 주목되는 통치이념은 바로 마르크스주의이다. 후 주석은 지난해 11월 공산당 집단학습에서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 구축을 위해선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원리를 중국의 실제 시대상황과 긴밀히 부합하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리창춘(李長春)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데올로기 담당)도 지난해 12월 16일 당 선전 및 이론 담당 관리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공산당 지도부는 마르크스주의 부활을 담은 프로젝트가 중국이 직면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혔다. 리 상무위원은 또 “당은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무제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2005년 12월 20일자 보도)

이처럼 중국 지도부가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강조하는 까닭은 공산주의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다. 중국은 현재 집권세력만 공산당일 뿐 사회는 시장경제체제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이미 세계 5위 경제대국으로 등극했다. 때문에 중국을 지배해왔던 마르크스주의는 사실상 폐기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이 같은 마르크스주의의 폐기가 위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공산당의 정체성이 사라진다면 중국을 그 동안 일당지배해온 통치 논리도 없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 공산당은 소련의 해체가 사회주의의 모태가 되는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을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고 중국이 안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모순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 지도부가 개혁·개방과 경제 급성장으로 비롯된 이념적 공백을 메우고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를 역점 사업으로 삼은 것이다.

후 주석이 올 설에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상징인 옌안(延安)을 찾은 것도 바로 마르크스주의의 부활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04년 1월 ‘마르크스 공정’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공산당 지도부는 그 동안 내부적으로 토론회 등을 거쳐 지난해 12월 26일 마오 전 주석의 탄생일을 맞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중국 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 공정에 약 2억위안(한화 260억원)의 자금과 3000여명의 마르크스·레닌주의 학자들을 투입시켰다. 이들 학자는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정치학·경제학은 물론, 사회·교육·문화·민족·언어이론 등 전방위적인 연구 성과를 100~150권의 방대한 저작에 담아낼 예정이다. 이를 위해 우선 중국사회과학원에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원을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성 취푸에서 열린 공자 탄생 기념행사에서 인민해방군 병사들이 헌화하고 있다.

마르크스 공정은 공산당 중앙이 직접 지도하며, 책임 부서는 공산당 중앙 선전부가 맡고, 중국 공산당 중앙당 학교, 중국 사회과학원, 국방대학 등이 참여하고 있다. 마르크스 공정은 총 10년으로 계획되어 있으며 매 3년마다 성과를 발표한다. 이 공정의 목표는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마오쩌둥 이론,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론 등 중국화된 마르크스 이론 연구의 강화다. 둘째, 마르크스와 레닌 저작의 새로운 번역으로 2007년 전까지 10권짜리 마르크스·엥겔스 문집을 출판하고 5권짜리 레닌선집을 펴낼 계획이다. 셋째, 시대적 특징을 잘 반영하는 마르크스주의 학술체계의 건설이다. 넷째, 공통교재 4권, 기초이론 교재 3권, 중점 교재 6권 등 모두 13권의 고등학생용 교재를 펴내는 것이다. 이 교재들은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다섯째, 젊은 이론가 등 마르크스주의 연구 인력과 조직을 강화하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 공정의 핵심은 심각한 빈부격차 문제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처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역사상 이처럼 거대하게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르크스 공정은 이미 중국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대학생 전원은 마르크스주의 수업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한다. 고교생들은 대학 입시를 치르기 전에 먼저 마르크스주의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중국 공산당이 이처럼 핵심 국가사업으로 마르크스 공정을 추진하자 성시(省市)급에서도 연구원들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중국의 최대 매체인 신화통신과 런민르바오(人民日報)도 각각 ‘홍색의 기억(紅色記憶)’이란 고정란을 두고 사회주의 혁명정신을 고취시키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베이징 국가박물관에서 마르크스 탄생 187주년을 기념하는 관련서적 및 기념품 전시회가 중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열리기도 했다.

공산당 지도부는 그 동안 분출하는 농민 시위와 폭동, 도시 빈민의 확대를 보면서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대처할 방법을 고민해왔다. 이를 돌파할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절실한 때 공산당 지도부는 바로 공자의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라는 구절에서 해답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무덤에서 부활한 공자나 마르크스가 21세기에 중국인이 자신을 논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